그 남자네 집/박완서


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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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치며 빛났다.
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.

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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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.
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.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.
애인한테보다는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.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.
구슬 같은 눈동자,구슬같은 눈물,구슬 같은 이슬,구슬 같은 물결..
어디다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.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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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는 왜 그랬을까?후회는 아닐 것이다.아무리 되짚어 곰곰 생각해봐도 결론은 늘 그럴 수 밖에 없었다,
라고 나오니까.
문제는 후회가 아니라 못잊는다는 데 있다.아마도 잊기가 아까워서 못 잊을 것이다.

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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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답이 나오면 비밀은 없어진다.나는 그렇게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.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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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내 옆에 꿇어앉아 자기 털장갑을 뒤집어서 내 발끝에 씌워주곤 했다.
손가락장갑을 바닥만 뒤집으면 그 안에 다섯 손가락이 뭉쳐있게 되고 그걸 발 끝에다 신으면
아무리 꽁꽁 언 발가락도 스르르 녹으면서 훈훈해진다.
그는 어떻게 그런 신통한 생각을 해낼 수가 있었을까.
그건 일석이조였다.언 발가락이 따뜻해졌을 뿐 아니라
내가 그토록 애지중지당하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맛볼 수 있었으니까.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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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춘이 생략된 인생,그건 생각만 해도 그 무의미에 진저리가 쳐졌다.
그러나 내가 그토록 감사하며 탐닉하고 있는 건 추억이지 현실이 아니었다.
나는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다.
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.
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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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.이별은 슬픈 것이니까.
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남아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.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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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,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.
넘칠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.
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게 아니란다.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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